mosa. 2012. 3. 11. 14:46

1년 전의 동일본대지진.

당시 일본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취업 실패에 좌절을 느끼고 있던 나는
대지진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국으로 1달 동안 돌아오게 되었고,
의외로 한국도 재밌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고,
실제로 살면서는 신경 쓰지 않았으나, 한국의 지인들이 알게 모르게 주던 방사능 스트레스,
취업활동 다시 실패, 비자문제 등으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일본에 간 것이 아닌 일본에서 돌아온 것을 20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는 나지만,
지진이 내게 미친 영향은, 의외로 상당히 크다 

물론 내가 있던 동경은 큰 피해는 없었다
물론 사상자가 수 명 있기는 했고, 교통이 마비되고, 대규모 전력 공급 문제가 발생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숨이 붙어있고 다치지 않았으니 교통마비와 전력문제가 문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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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지진이 없었다면 나는 취직해서 회사를 다니고 있고,
내가 하고 싶어했던 일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일본에서 돌아오면서 많은 것-하고 싶은 것, 내 생활-을 버리고 왔다
한국 생활은 생각했던 것 보다 즐겁고, 생각했던 것 만큼 힘들다
일본에서 겪었던 것들과는 다른 즐거움이고, 다른 힘듦이다
가끔, 아니 자주, 내가 버리고 온 그 곳에서의 즐거움과 힘듦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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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의 지진은 여전히 아프고,
가끔은 정말 가슴 깊은 곳에 눌려있던 감정선을 자극하여 눈물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누군가가 지진 이야기를 가볍게 하면 심하게 불쾌하고 하루 종일 감정 다스리느라 혼자 지친다
그래서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선택한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요일로 보내기'이다
과제 때문에 당장 어렵고 두꺼운 책도 읽어야 하고, 
의미를 갖고 특별하게 보내기에는, 내가 선택한 지금이 그렇게 되게 해주질 않는다,
그리고 난 이 현실에 순응하기로 했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내가 잊지 않으면 되는 거다
이러나 저러나 나는 현재진행형의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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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이후, 삶에 대한 나의 자세가 바뀌었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다고 정확히 꼭 집어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것은, 
편하게 안주하고 앉아 있고 싶어했던 나는,
이 무거운 엉덩이를 겨우 들고 일어나 움직일 준비를 하고, 
앞으로 움직이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이 시꺼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도, 그 앞을 보기 시작했다

살아 남았으니까,
그렇게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면 되는 거다 

이것이 지진이 내게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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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는 이 날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했는데, 결국
신나게 웹툰 보는 거에 정신 팔려 정신 차려보니 15시가 넘어있었다
이거야 아까 새벽에 미리 써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