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sa. 2014. 8. 5. 04:24
어쩌면 이 극도의 피곤함은 '그'에게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전 파트너와 함께 할 때엔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 무려 '독서'도 하곤 했는데, 생각해보니 최근 두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책을 손에 대지도 않은 것 같다. 사실 '그'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끝도 없다. 내가 왜 10살이나 어린(학년으로는 11년 차이..) 핏덩이를 데리고 이 고생인지.

사실 '그'를 보면 한 사람이 생각난다. 이노우에 챠트라 고-타. 무려 미들네임이 있는 이 혼혈의 일본인은, 마츠야의 동기 쯤 되는, 나와는 7살 정도 차이나는 남자사람. '그'의 머리 회전 속도나 센스의 수준은 챠트라와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알바는 둘이서 일하는데 파트너가 챠트라 같은 놈이야"라고 말한다면, 마츠야의 멤버들은 모두 내게 측은한 마음을 가지며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려주며 힘내라, 기운 내라, 고 응원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생각난다- ㅎㄹ쨩. 언제나 제멋대로 하는 그 알 수 없는 행동들. 아마 '그'는 이 두 사람을 반반 쯤 섞어놓은 듯 하다. 

물론 내가 '그'에게 감정적인 언행을 하곤 한다. 나는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그'가 내 안의 나도 모르고 있던 또다른 나를 꺼내준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서른 살의 나는 조금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챠트라에게 "걸리적 거려あんた邪魔だよ"라는 말을 해서 꽤 긴 시간 챠트라의 친구들에게 무시를 당했고(선배라는 작자-S야마-는 따돌림까지), ㅎㄹ쨩에게는 "니 머리는 장식품이냐?お前の頭は飾りもんかよ?"나, "머리 좀 써-제발 좀- 頭使えよー頼むよー" 등의 폭력적인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파트너에게는 아직 이러한 말들이 마음 속에만 존재하고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서른의 나는 조금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할 만도 하지 않은가. 적어놓고 보니 또다른 나가 아니라 과거의 나이긴 하지만, 챠트라도 ㅎㄹ쨩도 또다른 나를 꺼내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나의 언행에 불쾌해 한다. 속으로 '누난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생각 안 하나요?'라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기류를 느끼는 나는 소심하기 짝이 없어,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왜 얘 눈치를 보면서 일해야돼??'라고 깨닫게 되는 순간, 꼭 역전의 기회는 찾아온다. 내가 그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에게 느꼈던 아주 작은 미안함이 사라지는 순간, 그는 가시방석에 앉게 된다. 그리고 나름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부단히 애를 쓰지만, 안타깝게도 먹힐 리가 없다. 자신이 노력하면 누나의 무서운 얼굴이 풀릴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은 가게를 나가는 순간까지도 오지 않는다.

사장님은 그의 시급을 올려주는 이유를 "잘 참아서"라고 말했다. 나의 거친 공격에도 그는 '잘 참고' 있어주었기 때문인가보다. 사장님은 한 가지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무시하고 있다. 그것은 거칠게 말이 나올 정도로 문드러진 내 속. '그'와 사장님은 모르고 있다. 사장님은 내가 가게를 그만두려고 하는 것 조차도, '그'는 내가 가게를 그만두려고 하는 80%의 이유가 본인이라는 것도. 나의 언어 선택과 말투가 점점 사나워지는 것은 곪고 곪은 고름이 터져나오는 것과 같다. (사장님도 자꾸 내가 '말이 세다'라고 하는데, それは貴方に言われたくありません。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니죠. 감정의 기복이 심해 종종 직원들에게 익룡 스크림을 발사한다.) 그렇다면 나의 입은 왜 이렇게 거칠어졌는가. 처음의 파트너와는 워낙 잘 맞았고, 그 이후에 스쳐지나간 몇몇의 교육생들에게도 이런 언행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왜 유독 '그'에게만 거친 것일까. 귀찮은 동성관계가 아니라서? 라는 점도 물론 나의 거친 말들이 나올 수 있는 밑바탕이 되기도 하지만, 가장 문제는 '그'는 정말 환장할 만큼 속터지는 외곬이라는 것이다. 


나는 종종 청소기를 밀며 5無(철, 센스, 눈치, 염치+배려)의 '그'에 대해 결론을 내곤 한다-군대를 안 가서 그래. 사장님은 그에 대해 "남자애들은 어쩔 수가 없어. 우리 아들들도 그래-"라고 하지만 여기엔 이상한 모순점이 있다. 나와 함께 일했던 남자들은 대부분이 철도 센스도 눈치도 염치도 배려의 수준이 엄청 높았다. 챠트라의 친구였던 호리에, 타카츠, 그들의 선배였던 아카이, 점장 츠치다, 그 외의 선배들. 물론 경주마처럼 바로 앞만 보고 주변을 보지 못하는 챠트라, 하루쨩, 아베쨩 등등이 있긴 했지만, "남자=센스 없음"이라고 하기엔 내가 알고 지낸 남자들은 그런 사람이 오히려 드물었다. 물론 이것을 한국인/일본인의 특징으로 구분 짓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더 웃긴 건 이 '없는' 남자들이 군대만 다녀오면 그 중 상당수가 그동안 갖고 있지 못했던 것들을 몸에 장착해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조심스럽게 답을 내보면 '가정'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의 가정이 어떠한지 모르겠고, 나의 남동생도 군대 가기 전엔 5無의 인간이었고, 지금도 딱히 완벽하게 개조(!)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가정에 대해 함부로 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2남 중 막내이고, 분리수거도, 쓰레기 버리는 것도, 설거지도, 칼질도 모두 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처음 해봤다-라는 부분과 매일 배고프다고 징징대거나, '어차피 누나가 해주겠지'라며 심각하게 남에게 기대는 점,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보거나, 남을 배려해야 한다-가 아니라 본인이 배려 받아야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점에서, 집에서 상당히 우쭈쭈하면서 자란 아주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막내 아들"이라는 것만큼은 확언할 수 있다. 내가 초반부터 그에 대해 불만인 점 중 하나가 "나는 그의 보모가 아니다"이다. 두 달 내내 쫓아다니면서 뒷정리를 해드렸다. 나는 왜 2달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내가 그에게 잔소리를 해야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안하면 나도 분위기 나빠질 일 없어 좋지만, 아무 말도 안하면 속으로 썩어가는 건 내 속 뿐이고, 눈치 없는 그는 절대 모를 것이고, 나는 그의 지적질 포인트들을 매일 봐야만 할 것이다.

나는 그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으며, 나는 그저 그와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눈꼽만치도 하고 있지 않고, '나도 센스 좋은 여자애랑 하고 싶다'가 현재 함께 일하는 '그'에 대한 총평이다.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 것인지. 내가 왜 취직을 안 하고 집 앞 빵집에서 프리터를 하는지 '그'는 그 이유와 의미를 무참히 날려버린다. '그'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을까.

언젠가 그가 내게 그동안 쌓여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설령 그러더라도 피할 생각도 없고, 오히려 그것은 판도라의 상자 오픈이 될 것이다. 그는 내게 '가끔 말이 심하다', '공포분위기 조성한다', '지적질이 너무 심하다' 밖에 할 말이 없을 것이니까. 그리고 할 말은 내가 더 많을 것이다. 나야말로 그동안 말하지 않고 쌓이기만 한 것들이 한 트럭이니, 한 번 열어버린다면 아마 둘 중 하나가 그만두는 것 외엔 마무리되지 않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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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나 저러나, 나는 그에게 함께 오후조를 하는 것은 9월까지라고 말해놓았다. 사실은 언니선배님의 빈자리(오전-오후 동시에)에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다행히 아무래도 후임이 구해지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듯 하여, 이상태로는 플랜B였던 '멜버른 행'을 선택하게 될 것 같다. 물론 이 선택을 하는 것도 많은 고민이 따른다. 우선 가장 고민의 요소(70%)는  갑작스럽게 중단해야만하는 '화실'이고, 나머지 20%가 아슬아슬한 자금, 10%가 가족이다. 화실도 가족도 이번에 나가면 한국에 돌아오는 건(물론 국가 이동 할 때마다 들르겠지만) 3년 후가 된다. 갑작스럽게, 그것도 위험하다는(!) 호주에 간다고 하면 당연히 반대하겠지. 

최근의 가장... 몹쓸 선택은 '알바 선택'이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 때문에 후회는 하지 않는데, 그 대가가 좀 많이 아프다. 솔직히 이건 모두 내 탓보다는 '그'의 탓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